아날로그 강호동 디지털 유재석Feeling something different 미국사람들은 필리핀인이나 방글라데시인이나, 한국인이나 아시안이라고 부르지만, 유럽에서는 한국,일본, 중국 이 삼개국의 사람을 따로 떼어서 오리엔털이라고 부른다. 미국사람에게 없는 차별의 단어가 왜 유럽에는 있는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대부분이 전통적으로 관습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일부분은 아시안이라도 무언가 다르다고 대답한다.피부색깔 또는 외면적인 차이보다는 정서적으로 (emotionally) 그리고 감정적으로 다르단다(feeling something different)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에 대한 어렸을때부터의 끊임없는 훈련과 적응을 강요받는 이들에게논리와 합리 즉 설명할수 없는 부분을 넘어선 무언가 다른 느낌 (feeling something different) 란 참 오묘하고도 자극적이고,또 무언가 다른 흥취를 가진 우리네의 깊은 정서와 무의식적 정취를 닮은 것 같다.에도 시대 저너머에서 부터 항상 떨쳐지지 못할 열등감에 너무 많이 미국을 흉내내어 헤겔이 말했듯 양이 질을 구축해 내어버린 일본의 경우와 너무 오래 또 한 이데아의 감옥에 갇혀있었던 중국을 제외한다면그 무언가 다른 민족의 온전히 한 가운데 '한국인'만 남는다.
한사람의 생각은 시대를 만들고 시대는 그 한사람을 변화시킨다.시대는 한사람의 사상과 생각이라고 칸트는 한때 말했다.지금 사는 사람들이 이 살아가는 시대조류의 밑바탕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그 면면한 시대조류의 영향을 받은 또 걸출한몇사람이 새로운 시대와 사람들의 생각과 흐름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정확한 정의의 차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그러한 것들이 표상적으로 드러나는 내 주변의 것에서 오히려 그러한 단어와 흐름에 대한 파악을 하는것이 소시민이고 시대인이리라.아직 몇가지 정교한 부속품들이 오밀조밀하게 이끌어내는 mechanic 의 합작품을 아날로그라고 하고 그 정밀한 몇가지 기계의조화품을 손목에 달고 다니는 사람을 아날로그인으로 칭하고 또 거기에 반영되어 턱시도 신사의 중후함이 연상되고 아울러, 그 중후함에서 뿜어나오는 너무 꽉 조여지지 않은 관용과 양보 절제의 미덕등이 함께 떠오른다면, 무언가 세련된듯 하지만, 조금은 냉정하고 한치의 빈틈도 허용할것 같지 않은 왠지 싸늘한 인간미를 상징하는듯한딱딱한 숫자들과 그러한 숫자로 손목을 장식한 어눌한 젊은이와 그 젊은이가 풍기는(아직 그런 여유가 없어서든 아니면 교육이 부경험이 부족해서든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 서늘한 인간관계가 떠오르는 것도 또한 디지털이다. 한국화 또는 동양화의 여백과 여유로운 공간, 또 추수를 할때도 곧 다가올 가을의 보리고개에 배고파할 산에 사는 동물에 대한 배려로 이삭 몇조각 남겨놓는 그런 무언가 꽉 채워지지 않은듯한 모자람에서 오는 허허로움이, 아마도 숫자와 개념의 합리적인 배치와 매칭에 익숙한 피타고라스 학파 이래로 합리성과 모자라지 않는 꽉 채워진 사고와 철학에 익숙하게 성장해온 서양인들에게 특히신생의 역사를 가진것이 아닌, 치열한 역사의 경쟁속에서 생존윤리로 합리성을 체득한 서양인들에게 아마도 feeling something different 로 말하는 아닌가 생각해본다.
서양인들이 바라보는 아날로그와 그 개념의 저변에 있는것?
우리도 무언가 개념적으로 꼭 집어 말할수 없는 어색한 상황을 말할때 '조금' 이라는 수식어를 말의 전후에 붙이듯이 그들도 설명할수 없는 부분에는 매우 어중간한 조사나 수식구를 붙여버리는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그렇게 딱 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 아닌 경우도 많다는 것은 생의 바다를 지내다 보면 모두 알게 되는 것이므로.디지털로 세상이 치닫는 때에 아날로그를 고집하거나 논의 하는것은 무언가 어색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인상이 들지만, 결국 사람은 탯줄로 연결된 아날로그에서 태어나서 또 바람과 비를 만드는 재료인 죽음이라는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것이다.아날로그 신봉자는 아니지만, 객관적이든 절대적이든 실체와 사실은 그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것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일반적 표상적 인식말 그대로 역사를 가진 어떤것, 이어령 선생님이 말한 유려한 선과 면을 가진 동양적인 것들이 이 아날로그의 상징 정도로 비춰진다면, 여백의 선을 가진 것들 예를 들어, 장독대, 넓은 하늘가에 맞닿아 있는 수평선, 시시각각 변화 되는 구름, 매뉴얼 차, 새마을호 기차 이런 이런 여유로움이 연상된다면, 딱딱 아귀가 맞아 들어가는 어떤 것들 냉점함, 세련되고 현대적인 모든 기계들이 디지털이라는 단어의 느낌과 맞아 들어간다고 했을때, 아직 아니 언제까지나, 아날로그가 존재 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 커다란 것이 아닐까? 슬랩스틱적인 우스꽝 스러움과 세련된 컬트적 개그의 대비가 그 두 개념의 구분에 포함될수도 있으리라...
강호동은 큰소리와 시간이 흘러도 세련되어 지지 않은 투박함은 아날로그이다강호동은 꾸미지 않는다, 그의 연기와 행동 모든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씨름계의 천하 장사였던 그가 세월의 연륜속에 익혀온 것이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을 정도의 투박함이 넘치고, 그 스스로도 항상 '촌놈' '바보' '무식함' 등을 별로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인다.연예 프로그램이나 그 세계에서 생존하는 것이란 시험을 치뤄서 높은 성적을 내는 사람만이 인기를 독식하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즉 자기 혼자만의 머리싸움이나, 수싸움이 아닌 세상의 시류와 그 바탕을 흐르는 정신에 영합하는 것이 승자가 되는 지름길이다.이런 면에서 생각하건데 강호동이 굳건하게 살아있으면서 오래 그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그 반증적으로 그 꾸며내지 않은 투박함과 무언가 허술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아직 이 시대의 조류로 굳건히 살아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련되어지는 유재석은 디지털이다. 2010년도 모 방송사의 연예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강호동이 유재석에게 들어 올리면서 '우리 같이 가재이~' 라고 한 감동적인 장면이 연상되지만, 유재석의 여러가지 프로그램에서 그의 진행솜씨나 유려한 행동 그리고 갈수록 세련되어지는 풍모등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 또 하나의 화두인 '디지털'의 모양과 매우 닮아 있다.세상이 검기만 하거나 또 희기만 하여도 생존해 갈수 없고 적절한 음영과 채색의 조화가 있을때 삶이 있고 활기참이 있듯이,이런 강호동과 유재석은 언제나 그 이미지를 더 구축해 간다면 적어도 이 땅에서의 인기는 그를 통한 이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또 거꾸로 사람들이 그 둘을 통해 반영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연예 생명도 길어질 것이다.
변치 않는 이미지의 구축으로 한시대를 반영하는 연예인들로 거듭나기를
이러한 것은 한국인은 아직 아니 아마도 매우 오랫동안 겉으로는 냉정한 디지털로 아마 변해 갈지 몰라도, 그 속을 움직이는 깊은 생각들은 서로와 서로에게 눈치와 격려로 한세상 살아나가던 그 옛날의 따뜻함이 살아 있을것이라고 믿어도 과언이 아니리라.우리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에게 '공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이미 우리 속에서 없어져 버린 무언가 강한 '초인'을 그리듯이 갈망하고 있기때문이다. 연예인 또는 운동선수에게까지 공인이라고 이름 붙인 모든 사람은 그들의 활동 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속에서 남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그런 '초인' 또는 '진정한 지도자'를 바라고 갈망하는 것은 한국이 아직 너무 냉정한 자기의 이익과 안위만을 추구하는 너무 냉정한 세상이 아니라는 한편의 격려이기도 하다.연예인은 변해야 된다고 하고 하늘아래 새것이 없다고도 하지만, 그들의 생존 전략은 지금까지 쌓아온 그들의 아날로그적 투박함과 디지털적 세련됨을 계속 적으로 발전시켜 가는 것이고 또 그렇게 될때, 서양인들이 말하는 feeling something different 라는 한국만이 가진 정서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시대의 인물로 거듭나기라 생각해 본다
var allblet_id = 139043, allblet_type = 9;




덧글